주말 저녁에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밥 차려 먹기도 귀찮아서 매운 떡볶이를 하나 시켰다.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승리호가 눈에 들어왔다. 개봉 당시에 보고 꽤 오랜만에 다시 재생을 누른 건데, 묘하게 처음 볼 때보다 더 빠져들어서 봤다.

투박해서 더 정감가는 한국형 우주선
장선장이나 태호, 타이거 박, 그리고 업동이까지 승리호 크루들의 케미는 다시 봐도 되게 찰졌다. 삐까뻔쩍한 최첨단 우주선이 아니라 기름때 묻고 나사 빠진 고물선을 타고 다니며 우주 쓰레기를 주워 파는 설정부터가 한국적인 정서랑 진짜 잘 맞아떨어졌다.
화려한 영웅들이 아니라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바쁜 하층민들의 억척스러운 생존기라는 점이 그냥 남일 같지 않아서 짠하기도 했다. 화투 치고 된장찌개 끓여 먹는 우주선 내부 모습도 은근히 현실적이라 피식 웃음이 났다.


한국 우주 영화에서 발견한 진짜 가능성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는 어릴 때 NASA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을 정도로 우주에 대한 로망이 유독 가득했던 아이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다큐멘터리나 영화, 유튜브 영상까지 우주 얘기만 나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무조건 챙겨본다. 사실 우주 SF 영화는 오롯이 할리우드 같은 해외 작품에만 기댄다고 생각했었는데, 승리호를 보면서 한국 영화에서도 충분히 그 희망을 찾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주 영화는 시각적인 영상미가 워낙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승리호는 CG가 어색하거나 겉도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쓰레기 수거선들이 서로 부딪치고 도심 궤도를 아슬아슬하게 질주하는 액션 장면은 솔직히 감탄하면서 봤다. 기술적으로 이 정도 퀄리티를 뽑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할 만했다.


아쉬운 빌런과 신파, 그래도 남는 따뜻함
근데 아쉬운 점이 아예 없던 건 아니다. 악역으로 나오는 UTS 회장 설리반의 동기가 너무 단순하고 평면적이어서 중후반부 긴장감이 약간 헐거워졌다. 결말로 다가갈수록 한국 영화 특유의 감정 과잉과 눈물 짜내는 신파 연출이 불쑥 튀어나와서 살짝 집중이 흐트러지기도 했다.

그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결국 뻔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 영화에 늘 존재하는 결말이 사랑인 이유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는 존재하는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보편적이라는 건 그만큼 상식적이고도 확실한 정답이라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부쩍 자주 한다. 승리호를 다시 보면서 눈은 제대로 즐거웠고, 마음 한구석은 훈훈하게 따뜻해졌다. 킬링타임용으로 틀었다가 생각보다 긴 여운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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