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주말 밤에 넷플릭스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영화였다. 제목도 그냥 평범하게 '해프닝' 이라서 처음엔 무슨 가벼운 코미디인줄 알았는데, 포스터랑 줄거리 요약만 보고도 뭔가 싸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틀어봤다. 그때 치킨 시켜놓고 맥주 한 캔 까놓고 보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치킨은 다 식어버렸다. 집중해서 보다보니 손이 안 가더라.

간단한 설정 소개
영화는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008년 작품이고, 사람들이 갑자기 하던 일을 멈추고 이상한 행동을 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이 도시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시작된다. 공원에서 멀쩡히 산책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걸음을 거꾸로 걷다가 뭔가에 홀린 듯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장면으로 문을 여는데, 그 장면 하나만으로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을 확 줬다. 주인공 부부는 이 알 수 없는 현상을 피해 도시를 벗어나려고 하고, 영화는 그 도피 과정을 따라가면서 조금씩 원인에 대한 단서를 흘린다. 근데 이게 좀비물이나 테러물처럼 명확한 적이 있는 게 아니라서, 보는 내내 뭘 피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쫓기는 느낌이라 묘하게 긴장감이 계속 유지됐다.

설정 자체가 되게 심플한데 그 단순함이 오히려 더 무섭게 다가왔다. 괴물이 나오거나 총격전이 벌어지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평범한 공간에서 갑자기 이상해지는 걸 지켜보는 것만으로 공포가 만들어지는 구조였다. 나는 이런 식으로 설명이 바로 주어지지 않고 계속 미뤄지는 전개를 좋아하는 편이라 초반부터 꽤 몰입해서 봤다.
소재에 대한 솔직한 감상
나는 개인적으로 미스터리한 현상을 다룬 다큐나 영화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런 쪽으로는 이 영화가 꽤 만족스러웠다. 이상현상의 원인이 식물들이 위협을 느낄 때 공기 중으로 내뿜는 무언가가 바람을 타고 인간의 호흡기로 들어가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서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처음엔 미스터리물인데 왜 갑자기 자연 얘기가 나오나 싶어서 의아했다. 근데 보다보니 이게 그냥 식물이 무섭다는 얘기가 아니라, 인간이 그동안 지구를 얼마나 괴롭혀왔는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지점이 있어서 묘하게 뜨끔했다. 자연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반격한다는 설정 자체가 2008년 영화치고 꽤 신선했고, 지금 다시 봐도 이 소재를 가지고 90분 러닝타임을 심심하지 않게 끌고 간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들한테 이 영화 얘기를 꺼내보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샤말란 감독 하면 다들 식스센스만 기억하지, 해프닝은 제목조차 생소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2008년도 영화인데도 나한테는 더 애정이 가고 소재 자체도 여전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영화로 남아있다. 영화관에서 본 건 아니고 집에서 혼자 챙겨본 영화인데도, 이상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 생각나는 영화 중 하나다.
아쉬웠던 부분
다 좋았던 건 아니고 아쉬운 부분도 분명히 있었다. 배우들 연기 톤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구간이 꽤 있었는데, 특히 긴장감이 최고조여야 할 장면에서 대사 톤이 너무 담담해서 몰입이 살짝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크 월버그가 주연인데도 과학 교사 캐릭터가 긴박한 상황에서도 수업하듯 설명하는 말투를 쓰는 게 처음엔 의도적인 연출인가 싶다가도 계속 반복되니까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중후반부로 가면서 긴장감을 쭉 이어가다가 결말 부분에서 설명이 조금 급하게 마무리되는 느낌도 있어서, 좀 더 여운을 남겨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그래도 이런 어색함들이 영화 전체를 망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어설픈 느낌 때문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재난 영화나 재난스릴러 특유의 과장된 연출이 없어서,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이 저렇게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러워 하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지금 다시 봐도 남는 느낌

시간이 꽤 지난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이 영화는 공포나 스릴을 노린 영화라기보다는 보고 나서 뭔가 찜찜하게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영화로 기억에 남아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장면이 유독 많이 나오는데,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그런 장면들이 영화를 보고 난 뒤로는 묘하게 신경 쓰이게 됐다. 실제로 영화를 본 다음날 공원을 걷다가 바람이 세게 불었을 때 나도 모르게 숨을 살짝 참았던 기억도 난다. 그 정도로 영화가 남긴 잔상이 꽤 오래 갔다.
완성도로 따지면 흠잡을 곳이 아예 없는 영화는 아니지만, 소재 하나만큼은 확실히 오래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요즘 나오는 재난물이나 스릴러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 한번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영화라 오히려 더 추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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