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에 치킨 시켜놓고 넷플릭스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영화가 컨테이젼이었다. 예전에 한 번 봤었는데 코로나를 겪고 나서 다시 보니까 느낌이 완전 다르더라. 누군가 나한테 재난영화 중에 재미있게 본 거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무조건 이 영화를 꼽고 싶다. 바이러스에 의한 재난을 다루는 영화인데, 보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안 떠날 정도로 묘하게 현실감이 있었다.
나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한다. 진짜로 이 세상에 치사율 높은 전염병이 퍼지게 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하는 그런 상상. 영화를 보면서도 그 생각이 계속 들었다. 마트에 사람들이 몰려서 물건 사재기 하는 장면 나올 때는 진짜 남 일 같지가 않았다. 이러다 정말 비상식량이라도 미리 구비해놔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해서 봤다.
간단한 설정 소개
영화는 해외 출장을 다녀온 여자가 귀국한 뒤에 원인 모를 증상으로 갑자기 쓰러지면서 시작된다.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싶을 정도로 평범하게 묘사되는데, 그게 순식간에 사망으로 이어지는 전개가 되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접촉했던 사람들에게도 하나둘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간다.

이 영화 재밌는 포인트 중 하나가 한 명의 주인공 시점으로 쭉 따라가는 구조가 아니라는 거였다. 의사, 질병통제센터 직원, 음모론 블로거, 평범한 가족까지 여러 인물들의 시점이 동시에 돌아가면서 바이러스가 어떻게 퍼지고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처음엔 인물이 너무 많아서 약간 헷갈리기도 했는데, 보다 보니까 오히려 그게 이 영화만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짐 없는 전개가 좋았다
일단 이 영화는 속도 자체가 꽤 빠르다. 재난영화 보면 중간에 감정 과잉인 장면 나오면서 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그런 게 거의 없었다. 감염이 퍼지는 속도, 사회가 붕괴해가는 속도,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는 속도가 거의 실시간으로 느껴질 만큼 빠르게 전개돼서 중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바이러스가 퍼지는 경로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는다. 손잡이를 만지고, 그 손으로 얼굴을 만지고, 다음 사람이 같은 손잡이를 만지는 식으로 아주 사소한 접촉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걸 보여주는데 그 연출이 되게 섬뜩했다. 영화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손소독제를 괜히 더 챙기게 되더라.

질병통제센터 쪽 인물들이 데이터를 분석하고 확산 경로를 추적하는 장면들도 꽤 흥미로웠다. 그냥 공포감만 조성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전염병이 어떻게 분석되고 백신이 어떻게 개발되는지 그 과정을 나름 디테일하게 보여주려고 애쓴 느낌이었다. 물론 영화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근데 좋은 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인물이 워낙 많다 보니까 몇몇 캐릭터는 감정이입할 틈도 없이 그냥 스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떤 인물은 비중이 너무 적어서 이름도 가물가물할 정도였고, 음모론 블로거 캐릭터는 개인적으로 좀 과장된 것 같아서 몰입이 깨지는 구간도 있었다.
그리고 결말 부분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 담백하게, 설명을 많이 덧붙이지 않고 마무리되는 편이라서 좀 더 극적인 걸 기대했던 사람들은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오히려 그 담백함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좋았는데, 같이 봤으면 좋았을 친구는 아마 좀 밍밍하다고 했을 것 같다.
지금 다시 보니까 더 와닿았다
예전에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잘 만든 재난영화 정도로 생각했는데, 코로나를 실제로 겪고 나서 다시 보니까 디테일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왔다. 마스크를 쓰라는 안내, 사재기, 백신 분배 순서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 같은 장면들이 그냥 영화 속 설정이 아니라 내가 몇 년 전에 직접 겪었던 상황처럼 느껴져서 소름이 돋았다.
특히 백신이 개발되고 나서 그걸 누구한테 먼저 줄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장면들은 실제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랑 겹쳐 보일 정도였다. 영화가 2011년작인데 어떻게 이렇게 미래를 예측한 것처럼 만들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감독이나 각본가가 실제 전염병 전문가들의 자문을 많이 받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그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마무리하며
전체적으로 봤을 때 컨테이젼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방식이 되게 영리한 영화라고 느꼈다. 괴물이나 좀비처럼 눈에 보이는 위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소재로 이 정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낸다는 게 신기했다. 재난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면 꼭 한 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고, 특히 요즘처럼 전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시기에 보면 더 몰입해서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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